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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적으로 볼 때, 운명적인 인연이 수많은 장벽을 뛰어넘어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으로 올 확률이 0퍼센트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짐이 구세계에 살 적에 몸에 익힌 인심 장악술을 구사하여 아름다운 여자를 이 다다미 넉 장 반에 꾀어들일 수도 있다. 광대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가 눈앞에 보인다면, 그녀는 인류 미답의 땅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던 것에 놀라고, 신세계를 연 짐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할 것이다.
그러나 짐은 그런 하찮은 잡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짐의 유일무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져야 한다. 하나의 길을 연구하는 위인들이란 늘 고독했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은 싸울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하물며 싸우는 인간을 비웃는 등의 자격은 일절 없다. 넘어진 자를 비웃지 말되, 넘어진 자와는 다른 길 쫓는 자가 되어야 하느니.
'다다미 넉 장 반을 나와, 사회와 대치해야 마땅한 일'이라며 짐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자는 '사회에 나가서 스스로 밥값을 못하면 한사람의 어른이 아니다' 라고 말할지 모른다.
국민 전부가 그 비판가의 입에 어육 햄버그를 처넣는 편이 좋다. 그는 사회에 스스로 밥값을 하는 지반이 공고하다면, 모두가 타인과 대등하다, 잘만 하면 타인의 위에 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오직 그뿐인 사상을 금과옥조처럼 외치며 자존심을 보전하기에 급급한 사람이다.
量子力学的に考えて、我が運命の人が幾多の障壁を乗り越えて我が四畳半王国へ降り立つ確率も零とは断言できまい。あるいは余が旧世界で暮らしていた頃に身につけた人心掌握術を駆使して、麗しの乙女をこの四畳半に誘い込むことも可能である。広大な四畳半世界を眼前に見れば、彼女は人類未到の地が意外に身近にあったことに驚き、そして新世界を切り開いた余を口をきわめて讃えるだろう。
しかし余はそのようなつまらぬ雑事に時間を浪費しない。
余に固有の戦いは、孤独に行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一つの道を究めんとした偉人たちは、つねに孤独であった。
孤独に耐え得ぬ人間に、戦うことはできない。
ましてや、戦っている人間を嗤ったりする資格は一切ない。転んだ者を嗤うべからず、転んだ者とは歩もうとした者なれば。
「四畳半を出て、社会と対峙しなければならぬ」などと余を批判する者もあるかもしれない。その者は「社会に出て、自分で飯を喰えなければ一人前ではない」と言うかもしれぬ。
国民はその批判者の口に魚肉ハンバーグを詰め込むがよい。彼は一人で飯を食える地歩を社会に固めれば、それで他人と対等だ、うまくすれば見下せると思い込んでいる。誰にも迷惑をかけておらぬというただそれだけのことを金科玉条のように唱え、自尊心の保全に汲々としている。
量子力学りょうしりきがく
障壁しょうへき
降り立つ おりたつ
人心掌握術を駆使 じんしんしょうあくじゅつ くし
麗しうるはし
人類未到の地 みとう
口をきわめて讃える たたえる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
雑事ざつじ
きわめる
いっさい
働かざる者食うべからず
なれば = ともなれば with なら,だったら、であれば、~라면
たいじ
つめこむ
ちほをしめる
きんかぎょくじ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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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이치가 정론으로서 통용되는 세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짐은 그런 정론이 통하는 곳에서 아득히 멀어졌다. 이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에서 이른바 정론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짐이 내리는 말씀이 곧 정론이기 때문이다. 비판가는 짐이 자신을 억지로 정당화하려 한다고 힐난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은 오히려 비판가들이다. 그들은 타인을 내려다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짐은 타인을 발판 삼아 자기합리화하지 않는다. 이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에서는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짐의 정당성을 몸소 나타낸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은 그런 것일 터다.
불쌍한 비판가여. 어떻게 해도 제군의 패배다. 제군은 제군의 세계에 속해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단순히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자기긍정이 안 되는 것이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세계를 저주하고, 저녁에 잠들 때마다 자신을 저주한다. 자기정당화에 혈안이 될 정도라면 짐은 나태함을 영광스럽게 택할 것이다.
정신이 귀족이라면 행동하지 않는다. 자기정당화를 주장하기 위한, 존재 이유를 확보하기 위한-그러한 목적을 갖고 행동하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신이 귀족이라면 그냥 존재한다. 지금 여기에 긍지를 갖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저절로 인생이 정당화된다.
そういった理屈が正論として通用する世界もあろう。 しかし余は、そんな正論でくくられるところから、はるか遠くへ来た。この四畳半王国においては、いわゆる正論は通用しない。
なぜならば、余の宣うことが正論だからだ。 批判者は、余が自分をムリヤリ正当化しようとしていると難詰するであろう。しかし、己を正当化するために血道を上げているのは、むしろ批判者たちである。彼らは他人を見下すことによって自己の存在を確認せんとする。しかし余は、他人を踏み台にして自己を正当化しない。この四畳半王国においては、生きてここに在ることが、 余の正当性をおのずから示す。世界が違うとは、そういうことである。
哀れな批判者よ。どうしたって諸君の負けである。諸君は諸君の世界にいるはずであるのに、それでもなお、単に生きているだけでは自己を肯定することができぬので ある。朝起きるたびに世界を呪い、眠りにつくたびに己を呪う。自己正当化に血道を上げるぐらいならば、余は栄光ある惰眠を選ぶであろう。
精神の貴族は行動しない。己が正当性を声高に主張するため、己が存在理由を確保 するため――そのような目的をもって行動することを潔しとしない。精神の貴族は、ただ存在する。今ここに誇りをもって在ることが、我らの生をおのずから正当化する。
宣う のたまう 말씀하시다
難詰 なんきつする 힐난하다
血道(ちみち)を上げる 혈안이 되다
踏み台 ふみだい 발판
栄光えいこう 영광
貴族精神 귀족 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진 개인과 그 집단
p.25
짐에게서 조림 국물처럼 배어나오는 빛에서 짐의 정신이 귀족이라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짐이라는 존재와 대치할 때 요구되는 태도는 둘 중 하나다. 찬미할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이런. 제군, 들리는가. 누군가 소리치고 있다. 이 요새에서는 매일 밤 축삼시(오전 2시)부터 동틀 때에 걸쳐, 다다미 넉 장 반의 주민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때로 그 소리는 각 다다미 넉 장 반에 뻗어있는 수수께끼의 쇠파이프를 타고 짐의 왕국에 바로 들리기도 한다. 그 심야의 포효는 들개의 울음소리 같은 것일까.
누군가의 포효에 대해 다른 누군가가 포효하기도 한다. 둘 다, 언어라는 형태를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심야에 포효를 주고 받는 걸 소통이라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조건반사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들 사이에 연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짐은 누가 어디의 다다미 넉 장 반에서 어떠한 역사를 만들든, 어떤 이유로 울부짖든 어찌됐든 좋다. 짐은 그들과 같은 부류로 간주되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그들도 짐과 같은 급으로 간주되는 것이 고통일 것이다. 친분은 사절이다.
余の身体から煮汁のように染み出す光の中に、余が精神の貴族たる証を見出せよう。 余という存在に対峙するにあたって、要求される態度は二つに一つ――賛美するか、 無視するか、だ。
おや。諸君、聞こえるか。 誰かが叫んでいる。 この要塞では、毎晩丑三つ時から明け方にかけて、何処かの四畳半の住民が咆哮するのを聞くことができる。時にはその咆哮が、各四畳半に張り巡らしてある謎の鉄管を伝って、我が王国へ直に届くこともある。その深夜の咆哮は、野犬の遠吠えのようなものであろうか。
誰かの咆哮に対して、別の誰かが咆哮することもある。両者、日本語の体をなしていない咆哮であるという点ではまったく同一だ。深夜に行われるそういった咆哮の応酬を、コミュニケーションと呼ぶべきかどうか、それともただの条件反射にすぎないのか。
我々の間に連帯は存在しない。余は、誰がどこの四畳半でどのような歴史を紡いでいようと、いかなる理由で吠えようとも、どうでもよい。余は彼らと同類とみなされるのをむしろ苦痛に思うのである。彼らも余と同類とみなされるのを苦痛とするだろう。なれあいは願い下げである。
煮汁にしる
しみだす
咆哮ほうこうする
応酬を おうしゅう
紡いで つむぐ 실을 짓다
その件は願下(ねがいさ)げだ 그 건은 사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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