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73 커다란 소용돌이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날이 밝을 무렵, 짐은 간신히 섬 그림자를 발견했다. 배를 섬 가까이 대보자 깎아지른 절벽의 수로같은 것이 섬 내부로 이어진다. 배는 빨려 들어가듯이 그 수로로 들어갔다. 짐은 힘없이 뱃머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배가 나아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윽고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폭이 좁아진 수로는 이윽고 비와호 수로를 거슬러 철학의 길인 벚꽃길로 접어들었다. 수면에 떠 있는 벚꽃잎을 헤치며 배는 조용히 나아간다. 내리쏟아지는 꽃잎이 모든 것을 감싼다. 뱃머리에 웅크린 채 간신히 고개를 들자, 배가 가는 방향에는 너무나 진짜인 듯하면서 가짜인 듯한 벚꽃길이 눈 앞에 만개해 있었다. 공기는 유리처럼 차다.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빛이 세상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