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물 41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73~p.275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건국사 完

p.273 커다란 소용돌이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날이 밝을 무렵, 짐은 간신히 섬 그림자를 발견했다. 배를 섬 가까이 대보자 깎아지른 절벽의 수로같은 것이 섬 내부로 이어진다. 배는 빨려 들어가듯이 그 수로로 들어갔다. 짐은 힘없이 뱃머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배가 나아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윽고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폭이 좁아진 수로는 이윽고 비와호 수로를 거슬러 철학의 길인 벚꽃길로 접어들었다. 수면에 떠 있는 벚꽃잎을 헤치며 배는 조용히 나아간다. 내리쏟아지는 꽃잎이 모든 것을 감싼다. 뱃머리에 웅크린 채 간신히 고개를 들자, 배가 가는 방향에는 너무나 진짜인 듯하면서 가짜인 듯한 벚꽃길이 눈 앞에 만개해 있었다. 공기는 유리처럼 차다.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빛이 세상에 가..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69~p.272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건국사

p.269 바보신의 말씀에 따르면 '자신의 재능을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것', '무익한 일만 할 것', '착한 사람일 것'이 바보신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라고 한다. 짐은 분명히 그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다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보신이 말씀하셨다. "착잡한 표정이구나." "칭찬받는 것 같지 않아요." "별로 칭찬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너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에서 살겠다고 맹세한 남자다. 너라면 이 다다미 넉 장 반을 근사하고 신비하며 유쾌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 우주에 편재하는 무수한 다다미 넉 장 반에도 영향을 줄 게 틀림없다." "그러면 어떻게 ..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64~p.268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건국사

p.264 왕국의 영광스러운 역사 앞에서는, 짐의 청춘의 1장을 잃어버린 것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미 다 타버린 책에 불과하다. 바깥 세상에서는 언제나 밤이 이어지고 있었다. 짐이 국외 시찰을 떠났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편의점이었으며, 호젓한 골목길에 늘어선 쓸쓸한 가로등이었으며, 24시간 영업하고 있는 서점이었다. 그것들은 교토의 끈끈하고 짙은 어둠의 밑바닥에서, 마치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의 하늘을 뒤덮었던 무수한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짐은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의 밤하늘을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국외 시찰 때 자전거로 달리면서 본 밤의 불빛 또한, 버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짐이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을 완전히 쇄국하게 된 이유는, ..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58~p.263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건국사

p.258 살풍경한 곳이었다.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가랑비가 콘크리트 블록과 녹슨 고철을 적시고 있다. 옥상 난간 너머 철학의 길에서부터 정토사浄土寺일대의 집집마다 불빛이 나와 밤을 비추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시커먼 요시다吉田山산이 솟아 있었다. 그곳의 밤 기운은 섬뜩했다. 옥상 구석에는 둥근 형태의 비싼 수조가 있었는데, 이국의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수수께끼 같은 감시 장치, 혹은 무슨 병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장치 옆에 빈약한 제단 비슷한 것이 있다. 촛불이 켜진 채 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바보신이라고 쓰인 작은 판자 조각이 놓여있었다. 여러 명의 바보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공물을 바치는 것처럼 보였으며, 금빛으로 칠한 표주박과 큰 밥공기, 반야..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53~p.257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건국사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건국사四畳半王国開国史 p.253 제군! 일찍이 짐은 말한 적이 있다――구세계를 벗어나, 다다미 넉 장 반이라고 하는 신세계에 내려선 쾌남, 즉 짐이 용맹하게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을 건국했던 일의 전말에 대해서. 여기에 다시, 황공스럽게도 짐 자신이 읊어보겠다,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의 무궁한 발전과 개국에 이르는 역사를. 왕국의 주춧돌을 쌓기 위해서 한 고충에 대해 반복할 생각은 없다. 다다미 넉 장 반 왕국의 역사서에 기록할 세 개의 싸움을 짐은 제압했다―'벽과의 싸움', '천장의 싸움', '바닥의 싸움'이다. 이들의 기념적인 승리로 짐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젊은 나이에 쟁취한 영토와 필적할 광대한 세계를 얻었다. 서적, 철도 모형, 지구본, 마네키네코, 괴수 인형, 컴퓨터 등의..

210422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44~p.249 굿바이 完

p.244 이래 봬도 친구는 많아서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별 아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인생은 즐거워요. 바보신 님도 인맥을 넓혀서 안 좋을 건 없잖아요. 아닌가, 안 좋은가. 온 세상 사람들이 바보가 될지도. 어라,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 뭘 근거로요? 나는 모두의 인기인입니다. 당신은 본 적 없는 주제에.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어? 보고 있었어요? 과연. 신이니까. 그래도 다다미 넉 장 반에 틀어박혀 있었던 거 아닌가? 엉터리잖아. 편재하고 있으니까? 사차원적으로? 과연. 흥. 알 듯 모를 듯. 몰라도 별 상관 없을 듯. 바보신 님이 보기에 전 어땠어요? 다들 절 좋아하고 있었나요? 그보다 애초에 제게 친구는 있는 건가요? 더보기 これでも友人は多くてね。誰からも愛される星のもとに生まれたので..

210421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39~p.243 굿바이

p.239 아무튼 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고 있으니까. 인기인이니까 말이야. 사랑스러우니까. 마셔, 마셔, 마셔. 가설을 세워봤어. 그런 거야. 나는 이만큼이나 사랑받고 있으니까, 송별회 같은 걸 하는 게 맞아. 그렇고말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실은 모두가 송별 파티를 계획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 사실을 내게 전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냉정하게 대했는지도 몰라. 아니, 별로 냉정하게 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시원스러웠지. 아무리 그들이 수줍어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시원스러운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그래. 맞아. 그렇게 생각해. 단연코 그렇게 생각해. 이건 결국 송별 파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그럴 때에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까. 훌쩍훌쩍 우는 건 안 좋지. 마셔라,..

210420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32~p.238 굿바이

p.232 이해를 못하고 있네. 단바의 그 '띠링'에 어느 정도의 마음이 담겨있었던지. 그는 이렇게 말하려고 한 거야. "교토를 떠나는 너를 나는 존경해. 하지만 나는 비련을 연기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너의 새출발을 눈물로 지저분하게 적시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서 계속 만돌린을 칠게. 언젠가 네가 훌륭한 인간이 돼서 교토로 돌아왔을 때, 만돌린을 높이 울려서 금의환향을 축하할 거야. 언젠가 반드시 올 그날을 위해서, 난 험난한 만돌린의 길을 걸어나가겠어. 잘 가시게, 친구여." 너는 아마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알았어. 그게 우정이라는 거야. 그는 만돌린의 음색에 마음을 실어서 전달하는 사람이야. 그는 바보 학생들에게 인생이란 길을 가르쳐왔는데, 그걸 귀기울여 들은 학생들 중 얼마만큼의 사람이 그의..

210419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27~p.231 굿바이

p.227 다들 솔직하지 못한 거야. 애정의 표현이 비뚤어져 있는 거지. 미우라부터가 그래. 일일이 내가 먼저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해. 다들 까다로운 사람들이지. 좀 더 크게,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주어도 좋을 텐데. 다들 날 너무도 좋아하는 주제에! 다음에는 히가시구라마구치東鞍馬口通거리까지 가자. 거기서 꺾어서 수로와 교차하는 지점까지 가는 거야. 아, 내가 만약 정말로 교토를 떠난다면, 이런 길거리의 자동판매기조차도 그리워지겠지. 이상한 카레집 간판도. 분명 외롭겠지. 그러한 외로움이라는 것을, 메노나 세리나는 친구로서 좀 더 캐내려고 하겠지. 아니, 그들도 듣고 싶어하면서 '우리 우정에 비련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꾹 참았던 게 분명해. 정말 애처로워. 이럴 땐 좀 솔직해져도 불..

210418 다다미 넉 장 반 왕국견문록 p.222~p.226 굿바이

p.222 다정해. 나는 이 얼마나 다정한가. 배려할 줄 아는 남자로구나! 자, 좀 걸어가자. 기타시라카와 벳토北白川別当의 교차로까지 가자. 저기 모퉁이에 찻집이 있는데. 아마 메노와 세리나라는 무리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거야. 한때 내가 궤변론부라는 곳에 재적하고 있을 때 신세를 진 무리야. 그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해야겠어. 그렇지만 말이야, 너무 춥네. 오늘. 너 그런 목도리를 어디서 발견했어? 아, 정말? 여자친구의 선물? 흐흥. 좋겠네. 여자친구의 선물로 목도리라니 괜찮네. 근데 밧줄로 목이 묶인 사람처럼 보이네. 서부극 같은 데서 말 탄 괴한들에게 끌려다니다가 목숨만 겨우 건져내온 사람 같아보여. 여자친구도 꽤나 황량한 선물을 주는구나. 아니면 착용하는 사람이 나쁜 걸지도. 레미제라블에 나오는..